
이성직의 〈아파야, 어서 쾌유, 100년 건강!〉은 개인의 사적인 추모 또는 애도의 여러 형태를 포괄한다. 1933년생(1막) 이성직의 외할머니 이명숙에 대해 이야기하며 잘했다고 물김치를 끓여주고 다시 연기하게 하여 인물의 친구를 대표한 인물이다. 그를 위해 연기한 사람(2막), 꽃꽂이를 해준다(3막) 일련의 행위이다. 과연 1막의 이명숙의 회고가 그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가깝다면 2막과 3막의 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명숙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다. 물김치 담그기는 이명숙이 만든 맛에 좀 더 가까워지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그 맛은 공연이 끝난 후 별도의 약속을 하고 나서야 한다는 사후적 증거일 뿐이다. 머지않아 이명숙의 물김치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이성직의 물김치의 관계는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알 수 없는 수준으로 끝나게 되는데, 그러나 후자를 통해 전자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성계급의 발화로만 보완될 수 있다.
오히려 이명숙의 남자친구로 위장한 친동생 이예빈과 남자친구로 위장한 김신자 사이에 음식점, 노래방, 옷가게 등을 방문하는 일정을 스냅샷으로 찍어 비리를 만들었다. 명숙의 친구, 그들은 스냅샷을 찍어 슬라이드 캔버스에 건네고 그림자처럼 앉아서 침묵을 지킨다. 물김치를 담그는 이성직의 모습은 이명숙을 존재감에 가깝게 만든다. 무대 분장 같은 분장을 한 이예빈과 이명숙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면 그의 훗날 발언을 인용한 김신자의 연기는 게임 자체를 즐기는 듯 가상의 이명을 -수크 선물. 반면 얼굴은 이예빈보다 이명숙에 가깝다.

이명숙이 아닌 남편과의 인연, 어릴 때부터 꽃꽂이를 직업으로 해온 시간 등을 이야기하는 김신자는 자신을 위해 꽃꽂이를 하며 이명숙을 애도하는 한편, 시간과 공존하는 이명숙, 이성직, 이예빈의 존재와 마주하는 이예빈은 ”라는 존재와 이 시간 전후의 더 넓은 시간의 스펙트럼을 품고 있다. 처음에 주어진 둘의 혼동이나 합성의 형태는 이명숙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미를 넘어선다.
이 가상의 공연을 연출하고 감독하는 이성직은 그의 술집 깡패가 되어 이성직을 “미스터. 그녀가 시간을 노는 동료가 된다면 이명숙은 그 시간 안에 이성직과 이예빈 밖에 있을 수 없다. 아마도 그의 슬픔은 그 밖에서 빈틈을 찾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외로움으로서). 추모를 위한 공연인 동시에 공연을 위한 추모라는 모순은 추모라는 행위 자체가 추모에 상응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과 만난다.
이명숙의 일화를 바탕으로 발화한 1막과 그에 따른 변칙연주 사이의 단절/간극은 이명숙의 성경 필사 노트에 공백으로 남겨진 증언의 일부이다. 공허함으로서의 형태는 심연으로의 충동으로서 합리성을 가로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라는 언어의 분명한 증거와 내면의 결여는 앞서 이성직이 말한 이명숙의 연민, 욕심, 자기밖에 모른다는 점에서 이미 설명될 수 있었다. 2막과 그 너머가 그것을 무너뜨리지는 못하지만, 사이비 애도 행위 이전에 특정 존재를 식별하고 규정하는 역할에 수렴하는 이명숙의 결론적 분석은 동의하기 어렵다. gone 언어와 손을 맞잡고 – 그것이 고인에 대한 모욕이든 아니든, 그 본성을 떠나서 ‘결론’보다는 열린 차원을 가졌어야 했다.

음식에 대한 강박적인 추구든, 소년에 대한 애정을 키워온 남자들의 원동력이 되는 좋은 반찬의 배급이든, 그것이 굶주림과 배고픔을 동반한 이른바 가난을 살아온 세대의 궁극적인 목표다. 가난하든 아니든,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의 삶의 원동력으로 확장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내재적 언어로 확장하지 못한 것 같다. 음식의 퍼포먼스를 포함해 의전을 ‘연기’하기보다 ‘체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사실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이용하는 그의 능력은 그 세계에서도 통하지 않았다. 이성직과 이예빈은 각각 그와 거리를 두거나 극도의 혐오감으로 이명숙을 바라보고, 반찬 자리를 내놓는 관행도 이성직과 이예에 의해 번번이 철회된다. -큰 상자. 다시 말해 이명숙은 적어도 두 사람에게는 위협적인 타자라기보다 심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에 가깝다.

이명숙이 자주 했던 말의 제목은 “아프다, 낫고 있다! 다른 가정을 할 수 있는 ‘아프다’와 달리 ‘아파야’는 고통을 의미로 승화시키려는 ‘절대적’ 의지에 얽매여 있다. 궁극적으로 이는 통증 자체를 포용하기보다 통증 자체를 부정하고 통증이 없는 일상적인 시간을 열정적으로 고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성직이 침대에 누워 귓가에 속삭인 말, 남에게 지지 않고 승리를 위해 싸운다는 말, 즉 살아남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와 바깥세상 없는 외로운 시선에서 내뱉은 말은 그저 삶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죽기 직전이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 자체를 꺾지 않는 영속적인 시선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그래서 이것은 이명숙의 다양한 면모가 아니라 이명숙의 총체적이고 순수한 세계관이 긍정되는 순간이다.
이성직의 묵묵히 물김치를 담그는 작업은 우리를 사물이 아닌 허공 그 자체를 응시하는 나전장과 돗자리가 놓인 첫 번째 빈 방으로 데려간다. 이 마지막 장면이 다시 반복됩니다. 일상은 계속되지만 방은 새롭지 않다. 그래서 슬픔은 끝나지 않습니다. 요컨대 〈아파야 쾌유 100년!〉은 이명숙이라는 특정 개인의 서사에 단편적 기억을 통해 접근하고, 일상의 기록과 수행, 흉내의 재현을 통해 슬픔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후자는 당사자의 의미보다는 애도의 과정이 어떻게 특정 개인의 시간으로 넘어가 의미를 만들어가는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둔 듯하다. (전작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픔과 웅장함 없이 애도가 가능한지, 이전 세대와의 적개심과 증오심을 친족제도에 전이시키는 뻔뻔함에 애도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작품이다. 다른 방식으로 “정신”의 의미를 반영합니다.
김민관 편집장 [email protected]
(성능 개요)
두산아트랩 퍼포먼스 2023, 이성직, 다원 〈Apaya Get Better Health!〉
공연 날짜: 16.2. – 18.2. 목 금 오전 8시 토 오전 3시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구성/사진: 이성직
배우 : 김신자, 이성직, 이예빈
드라마투그: 신재욱
메이크업 : 석필선
조명: 고귀경
음악 : 이예빈
감독 : 이보한
Stage Crew : 이승희, 조수아
라이트팀 : 신희, 고두영, 정혁영, 김현, 김지인, 오현아
조명기술자: 김현
사운드 크루: 박진아, 이효진
영상/음성, 운영자: 백소정
〈아파, 잘 지내! 모순되는 두 문장 사이에서 이성직은 이상하게 뒤얽힌 질문을 연달아 쏟아낸다. 가족이 아닌 자신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한 이명숙. 이성직은 이명숙을 연상시키는 목소리와 여배우가 연기한 이명숙의 사진 등의 자료로 구성된 연극 이명숙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우리는 이명숙이 살았던 힘과 그녀의 삶을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힘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살펴보고, 삶과 기억과 추모가 어떻게 ‘연기하기’와 관련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이성직
이성직은 연극, 공공미술, 다원예술 등 흔히 말하는 ‘공연’을 창작하는 크리에이터다. 우리는 참여자(청중)와 함께 컨텍스트를 만드는 협업 작업 방식을 위해 노력합니다. 기후위기, 시민복지, 노인 등 동시대의 주제를 찾아 일상의 행위를 작품으로 제시하며 성취의 정의와 한계에 대해 질문한다.
다원 〈sf식당〉, 〈새 관찰하자!〉, 〈감자전www.gamjajeons.com〉, 〈만성 탈수증 케어〉, 〈아프면 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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